필암서원은 완전한 평지에 입지한 서원으로 남북자오선의 중심축을 설정해 놓고 그 선상에 주요건물을 배치한 유교건물의 정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원의 문루인 확연루는 방주를 쓴 정면 3칸, 측면 3칸, 상하 18칸의 2층 와가로서 학생들의 휴식처로 사용되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중·개수되었고,
Ⅰ. 유교의 사상
유교는 중국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한 사서오경을 경전으로 하여, 정치도덕을 실천하는 유학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이다. 유학은 천명을 근본으로 하여 인의예지의 덕을 강조하므로, 조선시대에는 자기 자신을 닦고, 인간을 다스리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함으로써 종교의 경지에까지
㉠ 대구향교
조선시대인 1398년(태조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교동(校洞)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599년(선조 32) 달성공원부근에 새로 지었다가 1605년에 교동으로 다시 옮겼다. 일제강점
* 초등교육기관 : 서당
- 예로부터 내려오는 사설 교육 기관.
- 서당은 나라의 허가나 자산 없이도 여는 것이 가능해서 학식이 있는 선비는 누구나 설치할 수 있었다. 훈장이 교육 취미나 소일을 위하여, 또는 이웃이나 친구의 요청으로 학동을 받아 수업하는 경우, 마을의 몇몇 유지 또는 한 마을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행사와 교육의 중심 건물인 강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
Ⅰ. 녹동서원
영암에서 최초로 건립되었고 또 영암 유일의 사액서원인 녹동서원은 후일 영암에 유배되어 온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농암 김창협(農岩 金昌協) 부자가 추배되기는 하였으나 본래는 연촌 최덕지를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존양사라는 전주최씨 가문의 문중사우였다. 즉 녹동서원의
필암서원 확연루. 평지에 건물을 놓고 측면에 목재 계단 설치.
♣경사지형
경사지형 문루는 주로 사찰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찰이 대부분 산지 지형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 유형은 지형에 따라 석축의 높이를 건물의 위층 바닥면과 같아지도록 조절했기 때문에, 별도로 담장과
필암서원으로 상징되는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고, 동학군의 활동에서 중요한 전기가 마련된 황룡강 전투지역과 한말 의병의 중요한 근거지였다고 하는 역사적 사실로 인해 근래의 ‘의향’으로 정립되어온 지역이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홍길동전의 주인공인 홍길동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